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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2013년 5월

벌써 4주기가 되어 간다. 황망한 소식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그냥 흘려가며 퇴근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봉하마을은 세번째. 정말 아쉽게도 생전에는 찾아 오지 못했다. 미뤄도 될 것 같았기에,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았기에...

서거 소식 후 분노와 회한으로 가득한 채 방문했던 기억(2009년 6월 방문), 묘역이 채 정돈되기 전의 어수선함(2010년 5월 방문)은

이제는 많이 정돈된 듯하다.  

 

 

 

 

여느 시골마을이나 마찬가지로 봄의 봉하마을은 꽃이 지천이다.

물을 대 놓고 모내기를 기다리는 잔잔한 논은 도시인의 지친 마음에 위안을 준다.

하지만 곳곳에서 눈에 띄이는 인위적인 노랑은 이 곳이 봉하마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대통령의 묘역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소박하면서도 경건하다. 차분하면서도 기운이 느껴진다.

생전의 그와 닮아 있다.

그의 기운은 묘석을 통해 둥글게 퍼져나가다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 박석을 통해 사방으로 흐른다.

 

박석 하나하나의 사연과 메시지를 읽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래, 이랬었지. 우리의 마음이, 느낌이, 생각이 이랬었지...

왜 그 땐 그 걸 몰랐던 것일까?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까?

지금의 우린 왜 이리도 무력한 것일까?

 

 

 

 

 

 

 

우리 가족의 박석을 찾았다.

크지 않은 글씨지만 분명히 세겨 있는 네 가족의 이름.

분명 아이들이 살면서 이 곳을 찾아 올 일이 있을테고, 그 때 우리는 어떤 시절을 살아 왔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계기가 되겠지.

 

 

 

 

 

 

 

 

부엉이바위 아래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져 있다. 역시 노랑이다.

노랑 바람개비와 어우러져 이 곳이 봉하마을임을, 우리가 다시금 가슴 속에, 마음 속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정토원은 부처님 오신날이어서 그런지 부쩍 분주하다.

연등도 제법 화려하게 치장했고, 이곳저곳 손님 맞이 준비에 바쁘다.

그래, 이 곳도 이제 스스로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다.

 

 

 

 

 

 

 

 

 

 

 

 

봉하마을 주변은 언제나처럼 그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는 세상을 떴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아니 어쩌면 지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없기에 더더욱 그들에게는 이 담벼락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마디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마디를 차분하게 들어주는 것, 그게 쉬울 줄 알았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 했기 때문에, 그가 그리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쉬울 줄 알았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아니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마음에 없으면 도대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념관 맞은 편에선 마침 '노무현 레퀴엠'이 흘러 나오고 있다.

허름한 창고 같은 슬레이트 벽, 단순한 선으로 디자인된 검고 하얀 의자...

불경스럽기만 그를 위한 레퀴엠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아야 하고, 망가진 것을 다시 고쳐 세우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서의 다짐이 필요하다.

떠난 자를 추억하고 새로운 힘을 모아내기는데 적절한 공간이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명계남 손글씨 티셔츠 전시장의 저 소주는 소주병에 담긴 신나만큼이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게다가 노천식당에서 풍겨 나오던 부침개 냄새는 새벽을 달려온 배고픈 영혼을 마비시키는데 충분했다.

'아 미치겠다' 저 문구는 기폭제로 충분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혼자 봉하마을을 찾고 싶었었다.

아무리 친한 이라고 하더라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었다.

 

이제 2013년 봉하마을은 더이상 외롭지 않았다.

운전을 나눠해 주고, 막걸리를 부어주며, 세상을 이야기 나누는 친구들과 함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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