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뭘 찍어야 되요?"
동호회 출사에 따라 가게 되면 흔히 듣게 되는 질문이다.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여러해가 되다 보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폼새가 제법 고수처럼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다. 특히나 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신입 회원들은 출사 장소에 가서 "몇 시에 다시 모일테니 그 때까지 사진 찍읍시다."라고 하면 당황스러워 한다. 달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멋진 풍경이 도대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기는 하다. 주산지, 이끼계곡, 동해안의 일출, 서해안의 일몰 등등... 어쩌면 이런 곳을 잘 추려서 출사지로 하지 않고, 우중충한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는 우리 동호회 운영진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운영진 친구들이 무슨 생각으로 출사지를 기획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 친구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여기선 뭘 찍어야 되요?"
위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반문한다.
"뭘 찍고 싶으세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의무적으로, 꼭 찍어야 하는 사진이란 없다. 누가 사진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블로그에 오늘 다녀온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찍을 게 없다면 찍지 않아도 된다. 그게 사진이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특권이다.
낯선 곳에 도착했다면 카메라는 잠시 잊는 편이 낫다. 아예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사실도 잊을 수 있으면 더 좋다. 그 곳의 냄새, 주변의 소리, 하늘의 빛, 오감을 통해 전해오는 그 곳의 모든 것을 그냥 느껴 보자. 공기는 습한지, 하늘은 맑은지,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지, 풀냄새는 어떤지, 꽃향기가 풍겨 오지는 않는지, 어느 집에서 밥 태우는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바람의 감촉은 축축한지...
몇 걸음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 보는 것도 좋다. 주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눈길, 나에게 익숙한 것이 있는지,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면 왜 그런 것인지, 이 동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지, 예전에는 어땠을 것 같은지, 또 앞으로는 어찌될 것 같은지...
나중에 이 곳을 기억할 때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를 짐작해 보자. 그리고 기억할 만한 몇 가지 키워드들이 떠오른다면 카메라를 챙기도록 하자. 카메라를 챙기면서 비로소 사진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무엇을 찍어야 그 키워드에 가장 부합될 것인지, 렌즈는 광각이 나을런지 망원이 나을런지, 아니면 그냥 표준줌으로 편안하게 찍는 편이 나을런지...
사진은 기록이다.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는 그 곳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록하는 방법이나 매체가 다를 뿐이다.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의 결과를 기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은 찰라의 예술이라는 말은 잠시 잊도록 하자. 찰라라는 것은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순간을 표현한 것 뿐이다. 사진에 담기는 것은 순간의 시간이 아니다. 피사체가 거기에 존재하고 있던 시간이 모두 고스란히 사진에 담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가 담고 싶은 시간만큼이 사진에 담기는 것이다.
인간의 오감은 언제나 열려 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은 사라지겠지만 들리는 것, 향기로 풍겨 오는 것, 피부로 느껴지는 것 등은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시각 예술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분 감상자의 입장에서만 그러하다. 사진에는 냄새도 담을 수 있고, 소리도 담을 수 있다. 또한 바람도 담을 수 있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느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서 담을 수 있느냐는 기술적인 부분으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어찌되었건 보이는 게 없다고 찍을 게 없는 경우는 없다. 사진이 시각예술인 것은 시각으로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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