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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2010년 5월
이동구
2010. 5. 23. 00:04
서울역에는 때 이른 6.25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1시 반쯤 봉하마을 도착. 봉하마을은 입구부터 노란색 리본, 풍선으로 꾸며져 있다. 작년에 왔을 때보다는 비통함은 조금 덜한 듯 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엉이 바위쪽으로 향한다. 비오는 와중에도 조성된 묘역은 마무리 공사가 한참이다. 저 안쪽 어딘가에 우리 가족 이름이 새겨진 박석이 자리잡고 있겠지... 급할 건 없다. 오늘이 아니라도 다음에 언제 또 오면 되니까... 묘역에서 뒷산에 오르는 길에는 시와 사진이 곁들여진 대형 걸게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울지 않기로 했다. 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공사가 진행중인 묘역은 일반인 참배는 불가능하다. 내일 추모식에서 묘역이 공개되고 참배가 시작될 예정이라니... 급할 건 없다. 오늘이 아니라도 다음에 언제 또 오면 되니까... 작년보다는 많이 차분한 분위기이다. 생각보다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없다. 찾아 보기 힘들다. 슬픔을 느끼기엔 분노가 더 큰 것일까?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바위 끝으로 몰아부친 것과 똑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지금의 정부를 생각하면 슬퍼할 겨를이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하지만 분노 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충돌과 다툼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분노를 삭혀낸 지성과 그 지성의 인도에 따른 행동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포크레인과 새빨간 거짓말들은 견디기 힘들다. 참 힘들다. 각설하고... 봉하빵집 앞에는 아까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줄에 서 본다. 내 뒤에 선 젊은 남녀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다. 회계사 시험을 통과한 남자친구왕 같이 온 아가씨, 은근히 남자친구가 자랑스러운 눈치다. 행복해 보인다. 지금만큼의 떳떳함을 계속 간직하고 살아주기를 나 혼자 빌어본다. 결국 한 시간 줄을 서서 빵 두 박스를 샀다. 하나는 유시민 후원회에 가입한 손위 처남 몫이다. 급하게 서둘러 길을 나선다. ... 이럴 줄 알았다. 묘소 참배도 못하고, 박석도 못 보고, 사람에 치이다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가 보고 싶었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가 보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오신 다음에도 급할 건 없다고 생각했었다. 오늘이 아니어도 다음에 언제 봉하마을에 가면 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9년의 그 토요일 이후부터 '다음에 언제'는 사라져 버렸다. 매해 기일마다 이 곳을 찾아 오기는 힘들런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적어도 1주기 만큼은 이 곳을 찾아 오고 싶었다. '다음에 언제'로 미룰 수 없는 날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