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 미분류

아몬드 꽃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커피향기

이동구 2009. 12. 6. 00:42

고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그림이 있습니다. 아몬드 꽃나무라는 그림입니다. 차분한 녹색을 배경으로 아몬드 나무가지가 카오스적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처남 내외가 일산 마두도서관 건너편, 산성교회 뒷편, 조용한 뒷골목 한켠에 커피전문점을 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커피를 배우러 다니더니 드디어 결심을 하신 모양입니다. 몇 달 동안 가게 알아 보고, 인테리어 공사하고, 준비를 한 끝에 드디어 손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도 이 커피 전문점의 이름이 '아몬드 꽃나무'입니다.

도대체 장사하고는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분들인데, 손님이 갈 때 제대로 커피값이라도 받아 낼 수 있을런지가 걱정될 만큼 착하기만 한 분들인지라 내심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게의 꾸밈새가 만만치 않습니다. 수수한 인테리어지만 허름하지 않은, 자잘하게 많은 것들이 가게를 꾸미고 있지만 결코 어수선하지 않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지만 매력적으로 멋을 부린 성숙한 숙녀를 보는 듯한 카페를 보면서 그 간의 사소한 염려들은 날려 버려도 될 듯 합니다.

카페 전면은 통으로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어 봄, 가을에는 활짝 열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깥에는 방부목으로 데크를 짜 놓고 테이블을 두어서 담배 한 대 피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음미하고 싶을 때 애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직은 많이 춥겠습니다만... 카페 안 쪽에는 40석 정도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로 4인석 위주이지만 테이블을 이리저리 세팅을 하면 8~10명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다. 목소리 큰 분들은 눈총을 좀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간이 트여 있거든요.



간혹 처남댁에 놀러 가면 집안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던 자잘한 소품들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카페 여기저기 모양새 있게 놓여져 있습니다. 형수가 여행 다니면서 모은 것도 있고, 직접 만든 것도 있고, 저희 가족이 일본 여행 다녀 오면서 기념품으로 사왔던 북어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



아무리 화려하고 고급스러워도 짜장면이 맛이 없으면 중국집이 아니죠. 아몬드 꽃나무의 커피 맛은 어떨까요? 제가 커피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맛은 어느정도 골라 마시기는 합니다. 회사 근처에 제가 절대로 가지 않는 커피전문점이 몇 곳 있죠. H, S 등...

제가 커피 맛을 알게 된 계기가 사실은 이 형님 때문인지라 사실 이 집의 커피 맛에 대해서는 객관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의 대부분은 형님께서 볶은 커피였기 때문이지요. 카페 오픈하기 전부터 시음삼아 몇 잔의 커피를 얻어 마셨습니다만 제대로 된 커피 맛입니다. 카푸치노의 커품은 느끼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입술에 묻어납니다. 핸드드립으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콩 마다의 특성이 살아 있습니다. 콜롬비아 커피와 케냐 커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몬드 꽃향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만 잘 한다면 착한 주인장께서 두 잔 값을 다 받으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조각 케익도 맛있습니다.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저렴한 입맛의 아내 역시 케익 맛에 반했다고 하니...

오늘은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테이스팅해 봤습니다. 소주 원 샷하는 장면과 똑같은데 왜 영화에서 에스프레소 원 샷하는 모습은 그리도 멋진 것인지... 늘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기 전 잠시 고민을 해 봅니다만 내 돈 내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었죠.

살짝 형수님에게 에스프레소를 부탁해 봤습니다. 크레마를 가득 얹고 나온 에스프레소는 역시나 앙증맞으면서도 진득한 향을 뿜어 냅니다. 조심스레 살짝 입술을 적셔 봤습니다. 정말 진한 커피가 입술을 타고 입 안으로 퍼지는 그 기분... 생각보다 쓰지도 않고 커피가 독하다는 느낌도 없더군요. 좀 더 입 안에 머금어 봤습니다. 최고급 코냑처럼 입 안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커피향이 참 매력적입니다.

앞으로 회의용으로 테이크아웃해 가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커피전문점엘 가더라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볼 생각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왠지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지 않나요?

첫 카드 결제한 손님에게 맨 윗 장을 주어 버렸다는 형수님의 실수담은 당분간 아몬드 꽃나무를 이야기할 때는 빠지지 않는 이야기 감이 될 듯 합니다. 좀 더 재미있는 실수담을 들을 수 있도록 손님들이 많이 찾아 주는 아몬드꽃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커피도 맛있고, 케익도 맛있고, 주인장도 좋은 분들이니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겁니다.

일산이라는 곳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진 동호회가 있는 곳입니다. 벌써 여러 해, 해마다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이브 까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끔 한 잔 할 때면 2차로 가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일산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 언제든 아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 아몬드꽃나무가 그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