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 미분류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지름

이동구 2009. 6. 9. 19:30

 

  
  렌즈를 샀다. Lensbaby Composer와 핀홀 렌즈. 하나는 제법 값이 나가고 하나는 아주 헐하다. 둘 다 깔끔하고 깨끗한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뿌옇고, 색수차도 많고, 약간 물빠진 색이 나오기도 한다. 상관없다. 요즘처럼 혼탁하고 지저분한 세상을 담기엔 이들로 충분하다. 

  Lensbaby Composer는 지난 3월 PMA에서 처음 본 제품이다. 국내에 출시되면 좀 기다렸다 중고로 사 볼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지만 출시되지는 않았다. 총판을 담당하는 업체에 문의를 해 봤지만 현재 환율로는 시장성이 없어 당분간 수입할 계획이 없다는 답변 뿐. 일본 출장을 갈 기회가 있어 요도바시에서 구매했다. 렌즈를 비틀어서 촛점 맞는 영역을 제한시켜 버리는 재미 있는 렌즈다. 조리개는 일일이 까만 금속 판을 렌즈에 끼워 넣어야 하는 불편한 구조이지만 특성상 조리개를 자주 변경할 일은 없으니 참고 넘어갈 만 하다. 

  렌즈 베이비의 특징으로는 조리개를 이런 저런 모양으로 만들면 보케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점. 하트 모양의 조리개를 끼우면 보케가 하트 모양이 된다. 조만간 조리개의 모양을 만들어 좀 시니컬한 사진, 세상을 우스개로 만들어 주는 사진을 찍어 볼 생각이다. 그야말로 '비뚤어질테다.' 돈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들을 사진으로 나마 좀 놀려 주고 싶다.

  핀홀렌즈는 쉽게 말해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어 주는 놈이다. 바디캡에 금속판을 붙이고 레이저로 아주 작은 구멍을 뚫어 놓았다. 유리던 플라스틱이던 광학 렌즈는 없다. 그저 보일락 말락한 구멍 하나 뚫려 있을 뿐이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도 바늘 구멍으로 화상을 만들어 냈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바늘구멍 렌즈라니, 그야말로 극과 극의 만남인 셈이다.

  또다른 시간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이미 ND400 필터를 가지고 늘어진 time frame의 사진을 찍어 보고는 있지만 핀홀렌즈는 빛이 그대로 CCD에 맺힌다는 점에서 또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날카롭고 쨍하게 상이 맺히도록 하는 렌즈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흐린 촛점에 뿌연 사진이 나오겠지만 아무 것도 거치지 않은, 피사체에서 반사된 광자가 그대로 CCD에 부딪히는,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을 갖고 싶다. 무엇이 본질인지, 얼마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새로운 장비를 지름으로써 슬럼프를 극복하려는 게 하수 중의 하수라는 거 안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장비를 장만하게 된 동기, 혹은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일단 최하수 단계는 벗어나 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사진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